좌충우돌 한식 알리기

농장 이슬 덜 마른 채소들 자식처럼 애지중지 손질 …
26가지면 26가지 맛 다 살려

날더러 ‘미련한 녀석’이라니?! < 본지 10월 26일자 22면 ‘셰프 릴레이’ 2회> 입맛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까다로운 박찬일 형님이 국내산 들기름을 고집하는 나를 이해 못 할 리가 없는데. 어쩌면 그분은 내가 가려는 길을 말한 건지도 모른다. 서울 압구정동 한구석에서 ‘최고 한식 밥상’을 꿈꾸는 ‘권숙수’를.

우리 시대 한식의 정의가 뭘까. 중국 출신 아주머니가 중국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중국산 그릇에 담아내는데 그게 과연 한식일까. 양·가격으로 승부하던 때는 지났다고 본다. 내 바람은 단순하다. 우리 땅에서 난 재료를 바탕으로 최고의 맛을 내고 싶다. ‘봄 주꾸미’라고 하지만, 중국산 냉동 주꾸미를 먹으면 제철이 무슨 소용인가. ‘신토불이’를 말함이 아니다. 더 좋은 재료가 있는데, 그걸 먹지 못한다면 손님에겐 기회의 박탈 아닌가.

새벽 수산시장을 가는 이유도 그래서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먹는 생선은 유통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잡은 지 최소 3일 된 것이다. 일식만 다르다. 여긴 새벽 1시 경매에서 직접 가져오는 별도 루트가 있다. 한식이 일식보다 못할 게 뭔가. 그래서 기를 쓰고 시장엘 간다.

게다가 요리사가 식재료를 안다는 것은 마치 사람을 만나 그의 직업·고향을 아는 것과 같다. 이 물건이 어디에서 와서 누구 손을 거치는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요리의 생명력이 살아난다고 할까.

최근에 그런 음식을 만났다. 서울 압구정동 ‘톡톡(Toc Toc)’(김대천 오너셰프)의 샐러드다. 두 달쯤 전 “오늘은 좀 색다른 것을 먹자”는 아내 말에 ‘톡톡’으로 향했다. 김대천 셰프와는 지난 3월 싱가포르 출장에서 만난 사이다. 요리사들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압구정동 식당 운영 노하우 등을 듣긴 했지만 그의 요리를 먹어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했다. 26가지 채소를 요리했다는데 입안에서 채소 하나하나가 식감과 맛을 내며 침샘을 자극했다. 오래 고민하고 직관적으로 채소를 다룰 줄 아는 셰프가 아니라면 이런 맛을 내기 쉽지 않다.

알고 보니 8개 농장에서 매일 아침 그날 쓸 채소를 가져온단다. 퇴비·농약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키운 갖가지 식물들을 농장 할머니들이 새벽 이슬 맞으며 따서 보내 준단다. 실은 나도 민들레·허브·해초류를 공급받는 농장들이 있다. 기본 재료에 충실한 사람들은 텔레파시처럼 서로 통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아내가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자”고 했다. 둘이 또다시 선택한 곳이 ‘톡톡’이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김대천 셰프와는 얘기 나눌 틈도 없었다. 그러나 안 봐도 보이는 듯했다.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재료 손질에 미쳐 있을 그가. ‘권숙수’ 주방에 있을 때 내 모습의 거울처럼.

정리=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