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한식 알리기

“같은 당근도 매주 맛 달라요”
농장 찾아다니며 식재료 탐구
‘한국 요리의 스티브 잡스’ 기대

몇 해 전 태풍 곤파스가 서해안을 초토화시킨 적 있다. 강풍이 해안가 송림을 덮쳐 나무 수백 그루가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졌다. 안면도의 적송(赤松)은 불에 탄 숭례문 복원 공사에 쓰일 정도로 귀한 것이다. 그런 수백 년 된 적송이 화목보일러 땔감으로 스러질 판이었다.

너무 아까워서 이걸로 접시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목재를 트럭에 싣고 인근 목공소로 갔다. 원하는 형태가 나오자 그라인더(연삭기)로 다듬고 필요한 곳에 구멍을 내는 등 모양을 갖췄다. 새로운 플레이팅에 손님들이 열광했다.

지금도 나무토막에 얹은 아뮈즈부슈(손님에게 처음 내놓는 깔끔하고 작은 한입 요리)는 ‘테이블포포’(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시그니처 메뉴로 통한다.

유학파도 아니고 미슐랭 스타 셰프 밑에서 수련한 것도 아닌 내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식재료다. 안면도·만리포 등 충남 지역 자연산만 쓴다.

내 고향 태안은 이탈리아 못지않게 식자재가 풍부하고 해안선이 아름답다. 이곳의 풍성함을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게 ‘테이블포포’의 음식이다.

이유석 셰프와 만난 건 몇 년 전 ‘부티크 블루밍’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가 우리 식자재에 관심을 보이며 가게에 놀러오라 했다. ‘루이쌍끄’로 가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충남 출신인 거다. 충남 음식 스토리텔링에 힘쓰자고 의기투합해 친해졌다. <본지 1월 25일자 20면 셰프릴레이 8회>

고향에선 인구 고령화로 노는 땅이 늘어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부모님이 그런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다. 호박·감자·양파·고추·마늘·생강 등을 택배로 배송 받는다.

그 밖에 프렌치 음식에 꼭 필요한 외국 채소가 있는데, 요즘 그것들을 신세 질 곳이 생겼다. 경기도 여주에서 하우스 농장을 하는 박미영씨다.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들의 파머(farmer·레스토랑 전용 농장에서 채소류를 키우는 일 담당)를 거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외국종 씨앗을 가꾸고 키운다. 쿠카멜론(미니수박의 일종), 말라바 시금치 같은 것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다.

‘제로 컴플렉스’의 이충후 셰프를 만난 것도 그 농장에서다. 프랑스에서 6년 있다 돌아와 2013년 7월에 자기 가게를 연 젊은 친구다.

나도 틈만 나면 농장에 갔는데 갈 때마다 만나게 됐다. 젊은데도 식재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같은 당근이라도 매주 자라는 만큼 맛이 달라져요. 혀로 공부하는 기분이에요.” 눈을 빛내며 하는 말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제로 컴플렉스’의 음식은 군더더기가 없다. 코스 요리라 해도 섬세한 스타일링보다 편안한 느낌을 우선한다. ‘좋은 식재료에 최소한 터치를 한다’는 셰프의 철칙이 묻어난다. ‘네오 비스트로’를 표방하는 레스토랑답게 메탈 재질의 모던한 공간도 이채롭다.

이 셰프의 옷차림도 한결같다. 군청색 면티에 검정색 바지, 마치 스티브 잡스 같다. 그가 한국 요리계의 잡스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의 음식이 새롭다는 거다. 그 새로움이 노련함으로 성숙할 때까지 응원하고 싶다.

정리=강혜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