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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위가 검사야”
2016 대한민국 검사의초상
“우리 사위가 검사인데, 와서 한 번 (계약서를) 보라고 해야겠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장모가 2011년 1000억 원 대 빌딩 거래를 하며 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왜 거액의 부동산 거래를 하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었던 사위를 불렀을까요?
우 수석은 이 거래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검찰이 그 내막을 캐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와 별개로 ‘내 사위가…’ 발언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무사는 얼어 죽더라도 곁불(돈과 권력)을 쬐지 않는다”
“검사는 서민의 백마 탄 왕자가 되어야 한다”(이명재 전 검찰총장의 2002년 취임ㆍ퇴임사)는 기대와
너무도 거리가 먼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사.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떻게 공부해 검사가 됐고 평소 어떻게 생활할까요?
"극소수의 일탈인데, 억울하게 도매금으로 욕 먹는다"는 검사들의 호소는 정말일까요?

전ㆍ현직 검사와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
‘2016 대한민국 검사의 초상’을 그려봤습니다.
Ⅰ. 유예된 젊음 Ⅱ. 영감님 혹은
검사 3학년
Ⅲ. 떠난 자와
살아남은 자

유예된 젊음CHAPTER 1.

‘FS마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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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젊음CHAPTER 1.

‘FS마크’의 시대

대한민국 검사,
그는 누구인가

“검사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성균관대 출신이 엘리트 코스 밟았다는 건
그만큼 노력하고 인맥도 관리했다는 의미 아니겠나.”

지난 6월 홍만표 변호사가 부정 청탁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검찰청 주변에선 이런 말이 돌았다. 검찰 내 요직으로 꼽히는 대검찰청 수사기획관까지 지낸 홍 변호사지만 의외로 출신 대학이 약점이었다는 얘기다. 사실일까.

대한민국 현직 검사는 총 2058명이다. 조인스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DB)와 법률신문 『한국법조인대관』에 올라 있는 이들의 학력을 분석해 보면 실제로 서울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 다음 고려대·연세대 순이다. “서울대는 성골, 연·고대는 진골, 나머지 대학은 6두품”이란 법조계 우스갯소리가 허튼 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일부에서는 법조계의 주류를 이루는 외국어고(F) - 서울대(S) 졸업자를 ‘FS마크’ 출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 ‘평균 검사’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유예된 젊음CHAPTER 1.

‘FS마크’의 시대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하며 같은 대학 동문을 만날 확률은 산술적으로 약 0.2%에 불과하다. 2010년 기준 25세 이상 대졸 경제활동인구(113만 명)를 전국 4년제 대학 숫자(183개)로 나눈 뒤, 전체 경제활동인구와 비교한 값이다(각 대학 정원은 동일하다고 가정).

하지만 현직 검사 2058명의 출신 대학은 단 40개뿐이다. 특히 서울대 출신이 전체의 38.5%로 압도적으로 많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각각 18.9%, 11.6%로 그 다음이다. 세 대학 출신을 합치면 그 비중은 69%에 달한다. 그 외 대학 가운데 한양대(6.2%)·성균관대(5.7%)·이화여대(3.8%)를 제외한 34개 대학은 비중이 1%대거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경향은 로스쿨제도가 도입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로스쿨 출신 현직 검사 가운데 서울대 학부 졸업자의 비율은 38.7%로, 사법시험 출신 검사 가운데 서울대 졸업자 비율(38.4%)과 거의 같다. 연세대(19.3%)·고려대(13.7%) 출신이 뒤를 잇고 있는 것도 사법시험 출신 검사들(고려대 19.5%, 연세대 10.7%)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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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마크’의 시대

검사 10명 중 7명은
SKY 출신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사는 명문대 쏠림이 더 심하다. 총 45명(※외부 개방직인 대검찰청 감찰본부장 제외) 가운데 서울대 출신만 62%다. 고려대(28.9%)와 연세대(4.4%) 출신을 합하면 93.3%다. 10명 중 9명 이상이 소위 SKY 대학 출신인 셈이다.

이같은 균질성은 조직과 개인을 동일시하는 검사 조직 문화의 바탕이 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질성이 높은 집단일수록 내가 곧 조직이요, 조직이 곧 내가 된다"며 "검사는 조직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성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균질한 집단일수록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외부에 대한 배타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 “통계적 착시현상”이라는 반론도 있다. 검사장급 이상은 대부분 20년 전에 임관했다. 당시에는 검사의 숫자 자체가 현재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특정 학교 출신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설사 검사들의 학력 편중이 사실이라 해도 시험이라는 ‘객관적’ 선발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검사가 조사하는 형사 사건 관계자들은 천차만별의 학력·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검사들이 몇몇 명문대 출신 중심의 균질한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실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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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마크’의 시대

‘KS마크’에서
‘FS마크’로

검사들의 출신 고교도 일부 학교에 집중돼 있다. 특히 특수목적고인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 많다. 법률신문 『한국법조인대관』에 올라 있는 현직 검사 2039명 가운데 187명(9.2%)가 외고 출신이다. 대원외고가 가장 많고(62명, 3%), 이어 한영외고(31명, 1.5%)ㆍ명덕외고(27명, 1.3%) 순이다. 반면 고위 검사들은 소위 지역 명문고를 졸업한 경우가 많다. 경북고와 광주제일고·대구고 출신이 각각 6.3%로 가장 많다.

출신고교의 차이는 검사 집단 내 존재하는 세대차를 보여준다. 전체 검사의 평균 나이는 40.3세다. 1970년대 중후반 태어나 90년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80년대 중반 생긴 외고가 '신흥 명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다. 반면 고위 검사의 평균 연령은 52.2세다. 1960년대 초반 태어나 70년대 중반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전이다. 고위 검사 가운데 지역 명문고 출신이 많은 건 그 때문이다. 평준화가 먼저 시행된 서울 출신의 경우 경기·서울고 등 전통 명문고가 아닌 여의도고·환일고(각각 4.2%)를 졸업한 고위 검사가 더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소 교수는 “고교 평준화 시행 후 학력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설립된 게 외고 같은 특목고”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당시 세계화 흐름을 타며 외고 설립 열풍이 불었다”고 말했다.

외고 출신 검사들이 늘면서 법조계에선 ‘FS마크’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과거 경기고(K)-서울대(S) 출신을 ‘KS마크’라고 불렀듯, 외고(F)-서울대(S) 출신이란 얘기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KS가 명문고-명문대를 상징했지만 교육 제도 변화로 FS가 부상했다”며 “시대 변화가 검사 집단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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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마크’의 시대

시대에 따라
검사도 변했다

시대에 따라 변한 건 검사의 출신고만이 아니다. 검사의 숫자 자체도 크게 달라졌다.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사법시험의 전신) 시절인 1961년만 해도 전국의 검사는 220명 뿐이었다. 63년 치러진 제 1회 사법시험 출신인 이건개(75) 변호사(전 대전고검장)는 “서울지방검찰청에 근무할 당시 검사가 45명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는 220명이다.

검사의 숫자는 그간 꾸준히 늘었다. 1970년엔 300명, 1983년엔 463명, 1990년엔 755명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매 5년마다 200~300명씩 늘어 2015년 2000명을 넘어섰다. 사회가 민주화ㆍ법치화 되면서 고소ㆍ고발 사건이 느는 등 법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연 300명 수준이던 사법시험 합격자도 1000명까지 늘어났다. 검사 숫자가 늘며 검사 1인이 담당하는 국민 숫자는 꾸준히 줄었다. 1961년엔 검사 1명 당 국민이 11만3500명에 달했다. 2015년 현재 검사 1인당 국민은 2만5600명 가량이다. 1983년 2000건이 넘던 검사 1인당 처리 피의자 수도 2015년엔 1200명으로 줄었다.

검사 숫자가 늘면서 검사가 누리던 특권 역시 줄었다. 이건개 변호사는 “옛날에는 검사가 임용이 되면 관할 경찰서장이 와서 인사를 했다. 검사가 유치장 감찰을 나가면 경찰서장이 서장실에 대기하다가 브리핑하고, 전화로 지방자치단체에 '이런 점은 고쳐야한다'고 하면 반영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검사가 적었던 시절엔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거나 검찰 내에서 큰 사고만 안 치면 검찰총장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검사 숫자가 늘면서 그런 것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금 의원은 “열심히 해봤자 큰 보상이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접대를 받는다거나 전관을 예우해준다거나 하는 식의 부정부패가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유예된 젊음CHAPTER 1.

‘FS마크’의 시대

수사권·기소권은
여전히 검사 손에

과거에 비해 특권이 줄었다지만 검사는 여전히 '힘 있는' 직업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보장돼 있는 이런 검사 고유의 권한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낸 김선수 변호사는 “수사권과 기소권 중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엄청난 권력인데, 대한민국 검찰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무소불위의 집단”이라며 “권한은 막강한 데 견제수단이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외국 검사들은 한국 검사만큼 많은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의 검사는 기소권은 독점하고 있지만 수사권은 없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수사한 경찰을 증인으로 불러야 하는 만큼 검사는 경찰과 긴밀하고 대등한 협조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수사권은 있지만 검찰 내 수사 인력이 없다. 때문에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려면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외적인 경우가 일본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검사가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갖고 기소권을 독점한다. 하지만 일본 검사는 한국과 달리 경찰에 대해 '수사 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충 수사를 하긴 하지만 경찰 수사를 직접 지휘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유예된 젊음CHAPTER 2.

신림동 블루스

유예된 젊음CHAPTER 2.

신림동 블루스

검사에게 신림동은

“내가 삼수에 대학교 4년,
고시공부한다고 신림동 쪽방에서 4년,
도합 11년을 왜 그 고생하면서 검사 배지 단 줄 알아?”

영화 '검사외전'의 주인공 검사(황정민 역)가 자신이 조사하던 피의자에게 한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사법시험 출신 법조인들에게 ‘신림동’은 ‘공부에 파묻혀 살던 시절’의 동의어다. 피 끓는 젊음과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하던 시절을 상징한다. 물론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현직 검사의 90%가 사법시험 출신이란 점을 고려하면 검사들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GALLERY신림동그때그시절

유예된 젊음CHAPTER 2.

신림동 블루스

신림동은 1960년대만 해도 철거민 이주지였다. 75년 서울대가 이전해오면서 천막촌이 사라지고 반듯한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대 학생들을 위한 하숙집이 생겼고 이들을 상대로 한 상권도 발달했다.

신림동이 고시촌으로 변한 건 1990년대 들어서다. 광복 이후 40년간 판례가 쌓이며 사법시험이 어려워졌다. 덩달아 고시생들의 공부량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학원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신림동에 고시학원이 모여든 건 현직 검사의 40%가 서울대 출신일만큼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서울대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늘어나는 법률 서비스 수요에 맞추기 위해 사법시험 합격자 숫자를 꾸준히 늘리면서 고시촌은 번성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 예비 검사'들은 신림동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전·현직 검사들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을 직접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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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블루스

신림동,
고시 문화를 바꾸다

신림동 고시촌이 생기면서 고시생의 생활도 달라졌다. 1960~70년대만 해도 고시 공부는 ‘절간’에서 하는 것이었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월간 『고시계』에 기고한 합격 수기에서 산기슭에 지은 토담집과 ‘장유암’이란 절에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절간에서 독학하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고시촌에서 고시 공부를 하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천도정 전북대 교수와 황인태 중앙대 교수 공동 연구팀이 2014년 발표한 ‘법조인 선발제도별 법조계 진입 유인 실증 분석’ 논문에 따르면 고시생들은 연 평균 932만 원을 쓴다. 사법시험 합격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79년이다. 고시 공부에 총 4500여 만 원이 든다는 얘기다. 아무리 아껴 쓴다 해도 고시원비며, 학원비·식비 같은 기본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간 『고시계』에 게재된 합격수기를 보면 후배들에게 돈 문제 해결하는 법을 조언하는 합격생들이 많았다.

DOCUMENT FILE故노무현前대통령등유명인사합격수기

DOCUMENT FILE월간고시합격수기中경제적조언

유예된 젊음CHAPTER 2.

신림동 블루스

고시생에겐
연애도 사치

고시생들이 아껴야 하는 건 돈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적인 감정과 욕망을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월간 『고시계』 합격 수기엔 “이성친구를 사귀지 말라”거나 반대로 “이성친구가 있다면 절대 헤어지지 말라”는 조언이 많다. 양쪽 다 감정 소모가 크다는 이유다. 그 외 “놀 수 있는 환경은 모두 제거하라” 같은 얘기도 있다. 합격자들은 한결같이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그게 합격의 왕도”라고 강조했다. 검사들은 평균 5년을 이렇게 산 사람들이다.

고시생 경험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대 초중반은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통해 성숙하는 시기인데, 고시생 대부분은 공부 외엔 다른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다”며 “사법시험 합격자는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미성숙한 권력자로 자란다”고 말했다.

고시 준비는 고시생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희생도 요구했다. 고시생을 둔 집안에선 ‘큰 시험’을 앞둔 자녀 혹은 남편에게 집안 대소사를 잘 알리지 않았다. 나머지 가족들끼리 알아서 집안일을 처리하는 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겼다. 합격 수기에 “부모님이 큰 수술을 받았는데 시험을 치르고 그 사실을 알았다”거나 “공부한다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애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경제적 도움을 준 누나에게 감사한다”는 류의 고백이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곽금주 교수는 “이런 경험이 권력과 시너지를 일으켜 검사들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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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블루스

‘제 2의 고시촌’
 사법연수원

사법시험에 합격해도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이 기리고 있었다. 사법연수원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사법시험 합격자가 매년 1000명씩 쏟아지면서 연수원 성적은 더 중요해졌다.

사법연수원생의 과도한 '학구열'은 종종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2001년엔 수료를 앞둔 연수원생이 7시간 동안 시험을 치룬 직후 쓰러져 결국 사망했다. 2006년엔 한 사법연수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은 다른 직군의 법조인들과 동료의식을 쌓는 시기이기도 했다. 검사 출신 김기표 변호사는 “일반인들이 몇 년생인지 확인하듯, 법조인끼리는 연수원 몇 기인지를 묻는다”며 “한 기수가 1000명씩 되다 보니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동기라고 하면 반갑다”고 말했다. 박종선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연수원 생활은 조(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조원끼리 맥주도 마시고 운동도 하면서 친해진다”며 “동기가 1000명씩 되다 보니 전체 동기 간 연대감은 느슨해지고 같은 조원끼리는 더 끈끈해졌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생은 '결혼 시장'에서 몸값도 높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검사들 역시 “연수원 시절 소개업체 등으로부터 맞선 제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동기생 여러 명이 한 명의 여성과 맞선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딸을 둔 고위 검사 혹은 판사들이 사법연수원에서 사윗감을 찾는다’는 식의 풍문도 끊이질 않는다. 때로는 사법연수생들끼리 이런저런 남녀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2013년엔 한 유부남 사법연수원생이 결혼 사실을 숨긴 채 동기생과 연애를 하다가 아내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로스쿨제 시행으로 이런 사법연수원의 풍경도 바뀌게 됐다.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사법연구원은 지금까지와 달리 법조인 재교육 기능만 담당하게 된다.

유예된 젊음CHAPTER 1,2

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