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침식, 백사장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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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라지는 동해 해변 / 5년간 사라진 모래사장, 축구장 132개

해안침식, 백사장이 사라진다

해안침식,
백사장이 사라진다

경북 경주와 울산 접경의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 마을 주민 김미선(64)씨가 개 2마리와 함께 몽돌해변을 걷는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집 앞 해변을 산책한게 벌써 37년째다.

그새 이 마을 해변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옛날에는 하서해수욕장이라 불렸다. 2㎞ 떨어진 수렴리 인근까지 그림 같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산책을 할 때면 개들이 모래 위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여름에는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놀았다. 하지만 지금 백사장은 간 데 없고 방파제 쌓을 때 쓰는 테트라포드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하서해수욕장이란 이름 자체가 사라졌다.

태풍이 오면 이 옹벽을 넘어요. 파도가. 옹벽이 다 깨져서 몇 번째 (다시) 한 거 에요.

"태풍이 오면 이 옹벽을 넘어요. 파도가. 옹벽이 다 깨져서 몇 번째 (다시) 한 거 에요."

대문 앞까지 다가온 바다

집 앞 백사장이 사라지면서 버려진 주택도 있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항 바닷가에는 80여㎡ 크기의 민박집 한 채와 낡은 주택 하나가 위태롭게 서있다. 민박집 주인 이모(81) 할머니는 시름이 깊다.

*경주 감포읍 나정리의 해안선 변화 [자료 경상북도]

바다가 자꾸 뭍으로 들어와 백사장을 다 가꼬가부렸심더. 민박집 손님도 다 쫓아내고 내 집까지 빼앗아갈라고 카네예. 해녀 탈의실도 보이소. 걱정 아입니꺼...

"바다가 자꾸 뭍으로 들어와 백사장을 다 가꼬가부렸심더. 민박집 손님도 다 쫓아내고 내 집까지 빼앗아갈라고 카네예. 해녀 탈의실도 보이소. 걱정 아입니꺼..."

민박집·해녀 탈의실에서 바다까지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는다. 대문을 나서면 바로 바다인 셈이다. 파도가 심한 날이면 바닷물이 민박집 앞으로 튀어 오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 걸음은 걸어 나갈 수 있는 백사장이 있었어예. 그랬는데 매년 백사장이 줄어들더니 저렇게 집하고 바다가 딱 붙어버렸다 아입니꺼. 황당합니더.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 걸음은 걸어 나갈 수 있는 백사장이 있었어예. 그랬는데 매년 백사장이 줄어들더니 저렇게 집하고 바다가 딱 붙어버렸다 아입니꺼. 황당합니더."

이씨는 최근 3년간 10번 넘게 자갈을 사다가 집 담과 바다 사이에 퍼부었다. 바다가 집으로 곧 들이닥칠 것만 같아서다. 그는 "집이 곧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길 건너 슈퍼마켓 주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파도가 높게 이는 날엔 바닷물이 2차선 도로를 넘어 가게 문 앞까지 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가 앞 바다에 수중 방파제(잠제·이안제) 300여개를 설치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방파제 일부는 벌써 물에 잠겼다.

무너진 정동진 레일바이크

레일바이크 타러 사람들이 많이 왔죠. 하지만 3~4개월간 운영을 못했을 땐 관광객이 3분의 2 정도 줄었어요.

"레일바이크 타러 사람들이 많이 왔죠. 하지만 3~4개월간 운영을 못했을 땐 관광객이 3분의 2 정도 줄었어요."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강세호(63)씨 얘기다. 국내 대표 해맞이 명소인 정동진의 레일바이크는 지난 1월 선로 100여m가 무너졌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전체 5.1㎞ 중 절반인 2.8㎞ 구간에만 바이크가 다닌다.

정동진 레일바이크가 무너진 데는 옹벽의 영향이 컸다.

하서해수욕장이 사라지고 정동진 레일바이크 선로가 무너진 건 해안침식(海岸浸蝕) 때문이다. 파도·바람 등의 영향으로 바닷가 모래와 토양·암석이 깎여 들어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해변에서 침식이 일어나면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후퇴하게 된다. 정동진에선 바다가 20~30m 길이의 백사장을 집어삼켰다. 그 탓에 주변 지반이 약해졌고, 옹벽이 무너지며 선로 붕괴로 이어졌다.

사라진 백사장, 축구장 132개

해안침식은 바닷가 주민들의 삶을 위협한다. 백사장은 폭풍·해일 등으로부터 육지를 보호한다. 침식으로 해안선이 후퇴하고 연안 수심이 깊어지면 이런 보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백사장이 사라지면 관광객도 줄어든다. 지역의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바닷가 주민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전국에서 해안침식이 가장 심한 곳은 경북 울진군이다. 5년간 11개 조사 대상 지점에서 22만4415㎡의 해변이 사라졌다. 경북 포항시에서도 화진·영일대 등 8개 해변 19만3670㎡가 바다로 바뀌었다. 강원도 강릉시에선 경포·안목 등 25개 지점 13만2285㎡, 고성군에선 송지호·삼포 등 26개 지점 8만9027㎡의 해변이 바다가 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최근 5년새 경북 55만2317㎡, 강원 39만4341㎡ 등 동해안 120여 곳 총 94만6658㎡의 해변이 사라졌다. 축구장(면적 7140㎡) 132개에 달하는 면적이 바다에 잠긴 셈이다.

2010년~2015년 사라진 해변. 서울월드컵 경기장 132개 면적 2010년~2015년 사라진 해변. 서울월드컵 경기장 132개 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