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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삼성 사이엔 무슨 일이

최순실(60ㆍ구속 기소)씨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이 21일 국민연금공단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1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찬성 표를 던진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합병 당시 삼성의 청탁을 받은 최순실(60·구속기소)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57·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에게 관련 부탁을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고 삼성이 그 댓가로 미르·K재단 출연금(204억원)과 승마 후원금(35억원)을 냈다면 박 대통령에겐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다.

과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에 어떤 의미가 있길래 수백억원의 '로비 자금'을 썼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걸까. 힌트가 하나 있다. 두 회사의 합병 전후 삼성 주요 계열사간 지분 관계 데이터다.

삼성물산-제일모직 왜 합병했나.

두 회사가 합병하기 전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그리고 그 아래 주요 계열사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생명과 그 아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는 축은 완성되어 있지만,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삼성생명을 통해 3단계에 걸쳐 지배력을 행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을 4.1%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삼성전자를 보다 직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제일모직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23.2%나 된다.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해 생겨난 '신(新) 삼성물산' 내 이 부회장 지분은 16.5%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직접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의 주요 주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배력을 가진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 경영권 승계의 ‘화룡정점’이었다.

삼성은 두 회사의 합병을 위해 일찍부터 움직였다. 원래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는 삼성에버랜드였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전환사채)을 발행한 뒤, 이를 시세보다 낮은 값에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에게 배정해 논란이 됐던 회사다. 삼성에버랜드 내 이 회장의 세 자녀 지분이 높아진 뒤 제일모직은 패션 부문을 삼성 에버랜드에 양도한다(2013년 12월). 다음해 3월 제일모직은 남아 있던 소재 부문을 삼성SDI와 합병했고, 7월 삼성에버랜드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은 그해 12월 상장했다. 당시 금융시장엔 이 부회장의 지분이 높은 회사(삼성에버랜드)에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떼어줘 회사 덩치를 키운 뒤, 상장시킨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제일모직 주식은 상장 첫날 공모가(5만3000원)의 2배가 넘는 11만3000원을 기록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가 될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자, 주식시장엔 “경영권 승계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실제로 제일모직은 상장 후 약 반 년(2015년 7월 17일) 뒤에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검찰 수사 부른 의혹들

이런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삼성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삼성물산 1주를 이 부회장을 포함한 일가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0.35주와 바꾸겠다고 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반대했다. 반면 삼성물산 주식 11.8%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찬성을 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지분을 모두 갖고 있었던 데다(제일모직 지분 4.8% 소유) 합병 후 주가 상승 여지가 있는 만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계속됐다.

누군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알고 싶다면 과거 비슷한 상황과 비교해 보면 된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한 달 전 정반대 결정을 했다. ㈜SK와 SK C&C가 합병을 하겠다고 하자, “합병 비율 등을 고려할 때 ㈜SK의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당시 SK는 최태원 회장 일가 지분이 많은 SK C&C 1주를 ㈜SK 0.73주와 바꾸겠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에 절차 상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연금은 주요 의결권 행사 전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한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SK C&C와 ㈜SK 합병 때 반대 의견을 냈고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 들였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땐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았다. 국민연금 측은 이에 대해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결정을 해 전문위원회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위원회의 결정을 놓고도 또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5년 7월 10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국민연금 내부에서조차 합병 비율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이경직 해외증권실장은 “자문기관이 자체 산출한 적정 합병 비율(1 대 0.43, 삼성물산 주식 1주를 제일모직 0.46주로 교환)보다 낮은 비율로 합병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합병에 반대했다. 합병에 찬성한 채준규 국민연금 리서치팀장도 “내부적으로 산출한 적정 합병 비율은 1 대 0.46(삼성물산 1주를 제일모직 0.46주와 교환)으로, 현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에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회의록 별첨 자료엔 “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높을수록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최대주주(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낮아지는 반면, 국민연금 지분은 높아져 국민연금 전체로 보면 긍정적”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때 의견을 듣는 자문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기업지배구조원(CGS)도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 측은 “SK C&C와 ㈜SK 합병 땐 두 자문기관 모두 '찬성'을 권고했으나 반대했다”며 “자문기관의 의견을 참고할 뿐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한다”고 해명했다.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이 투자위원회(7월10일) 직전 이 부회장을 만난 것도 의혹 중 하나다. “중요한 의사결정 전 해당 기업 경영진을 만나 계획을 듣는 것은 업무의 일환”이라고 국민연금 측은 해명했지만, 이 자리에서 삼성의 청탁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 측의 해명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집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실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 이후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 평가액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손실액은 5900억원에 달한다. 합병 후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던 지분 일부를 매각해 실제 손실액은 이보다 적은 2300억원 가량이지만, 국민의 노후 자금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줬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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