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적의 낙하산 부대‘공기업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정권 1년차 인사비교… ‘고소영’부터 ‘캠코더’까지

공공기관은 흔히 ‘정권 교체 후 1년간 가장 바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새로운 ‘점령군’을 맞이할 준비 때문이다. 권력의 끈을 잡고 떨어지는 수많은 ‘낙하산’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까지, 최근 3개 정부의 실태를 확인해 봤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등의 자료를 분석에 활용했다.

공공기관은 흔히 ‘정권 교체 후 1년간 가장 바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새로운 ‘점령군’을 맞이할 준비 때문이다. 권력의 끈을 잡고 떨어지는 수많은 ‘낙하산’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까지, 최근 3개 정부의 실태를 확인해 봤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등의 자료를 분석에 활용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내려온 낙하산

공공기관은 그간 역대 정권의 전리품처럼 다뤄져 왔다. “청와대나 장관급 인사만큼 주목을 끌지 않으면서도, 억대 연봉을 받는 곳. 즉, 선거에 기여한 ‘공신’들에게 인심을 베풀기에 적절한 자리”(엄태섭 서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기 때문이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 (임기 1년차)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 (임기 1년차)

구분 문재인 정부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
기관장 34명 41명 61명
이사 27명 51명 78명
감사 4명 15명 30명
  • 문재인 정부 0
  • 박근혜 정부 0
  • 이명박 정부 0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 정부는 어땠을까. 지난 1년간 공공기관장 97명이 바뀌었는데(2018년 5월 10일 기준), 야당은 이 중 34명에 대해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지목했다. ‘코드’ 인사의 기준에 대해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민주당이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진 않았지만, 문재인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한 개인이나 단체 소속인사”라고 정의했다. 20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민주당 전직 의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기관장 자리에 앉은 한국국제협력단(이미경)ㆍ한국농어촌공사(최규성)ㆍ한국철도공사(오영식)ㆍ국민연금공단(김성주)ㆍ국민건강보험공단(김용익)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같은 기준을 기관장 외 이사ㆍ감사 인사에까지 확대 적용해 보면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부대’는 65명으로 늘어난다.

정부기관 등으로의 파견근무를 희망하시는 당직자께서는 아래와 같이 지원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지원사항은 1~3순위로 구분하여, 희망기관/희망부서/희망직급을 작성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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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이 당직자들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 연출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 야당은 낙하산에서 자유로울까.
같은 '캠코더' 기준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임기 첫 해 공공기관 인사에 적용해 봤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 107명, 이명박 정부 169명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많은 ‘캠코더’ 낙하산을 내려보냈다는 얘기다.

‘캠코더’ 전에는 ‘고소영’ ‘서수남’

사실 정권 교체 후 낙하산 부대의 공공기관 점령이 처음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소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가 회자됐다. 실제 임기 첫해 임명된 공공기관장 102명 중 절반이 넘는 58명이 ‘고소영’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부대는 거침이 없었고, 점령군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최대 ‘피해지역’은 문화체육관광부였다. 임기 1년만에 문체부 산하 33개 공공기관 가운데 31개 기관장이 교체되거나 공석이 되면서 공공기관이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교체율이 94%에 달했다. 유인촌 당시 문화부 장관은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고소영’ 낙하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내는 것은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되는 일입니다.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12년 12월 25일) 그런 박근혜 정부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박근혜 정부는 임기 첫해 공공기관장을 무려 125명 교체했는데, 이중 78명이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 출신이었다. 청와대 및 장관급 인사가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일색이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2013년 2월 20일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친박의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임명된 인사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에게 공공기관 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해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겠다고 보고하던 중이었다.

각 정부의 공공기관장 '낙하산' 유형 - '캠코더'부터 '고소영'까지

각 정부의 공공기관장 '낙하산' 유형
'캠코더'부터 '고소영'까지

'캠코더' 부대의 영광과 시련

이번 정부의 '낙하산' 논란 인사 중 단연 화제가 된 것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이정환 사장이다. 공기업을 무대로 펼쳐진 한 편의 '복수혈전'같은 스토리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상황실장을 역임한 그는 2008년 3월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이제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압박이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검찰 수사, 9월 감사원 조사를 받았고, 결국 취임 1년 7개월 만에 떠밀리듯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정권이 바뀌자 지난 1월 부산 소재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사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이다.

이 사장은 이른바 ‘성골’ 캠코더 인사다. 지난 대선 땐 문 대통령의 부산시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19ㆍ20대 총선 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한때 낙하산의 피해자였던 그가 취임한 한국주택공사는 어땠을까. 이 사장이 주택공사 감사ㆍ비상임이사에 임명한 이동윤 전 부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과 조민주 변호사 역시 ‘문캠’(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이다. 또 다른 비상임이사 손봉상남경이엔지 상무는 문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부산 사상구의원을 지냈고, 노무현재단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부대’는 부산 지역의 민간은행에도 떨어졌다. 지난해 9월 김지완 BNK(부산경남은행) 회장이 임명됐을 때, 이 은행 노조는 ‘낙하산 인사’라며 삭발투쟁으로 맞섰다. 김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며,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 고문을 지냈다.

낙하산 부대의 스펙

공공기관은 흔히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연봉이 많고 근무 여건이 좋은 데다, 직업 안정성까지 높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공시생’들이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눈물의 컵밥’을 먹으며 힘든 수험 생활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신의 직장’에 장(長)이나 이사ㆍ감사로 입성하는 ‘낙하산 부대’가 되려면 도대체 어떤 ‘스펙’을 갖춰야 할까. 정권마다 다르긴 하지만 최근 각광받는 자격 요건은 이렇다.

Type 1캠프 스태프형 ㅣ 대선 캠프에 참여한다. (난이도 상)

Type 1캠프 스태프형
대선 캠프에 참여한다. (난이도 상)

  • 이름 김ㅇㅇ
  • 직장 한국콘텐츠진흥원
  • 직위 원장
  • 발령일 2018년 1월 2일
  • 주요경력 문재인 캠프에서 선대위 SNS본부 부본부장
  • 특이사항 다음기획 이사(탁현민 행정관,
    연예인 김제동·윤도현씨 등 소속)

당선 확률이 높을 수록 경쟁률이 치열하다.

Type 2여당 인맥형 ㅣ 여당 인사가 된다. (난이도 중)

Type 2여당 인맥형
여당 인사가 된다. (난이도 중)

  • 이름 김ㅇㅇ
  • 직장 한국가스안전공사
  • 직위 사장
  • 발령일 2017년 11월 30일
  • 주요경력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비서관,
    충북도의회 의장
  • 특이사항 비전라이트텍 대표 (기업정보 찾을 수 없음)

여당에 가입하는 건 자유. 직함을 원한다면
경쟁이 치열한 중앙당보다는 지역당을 노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여당에 가입하는 건 자유. 직함을 원한다면 경쟁이 치열한 중앙당보다는 지역당을 노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Type 3코드 일체형 ㅣ 청와대의 국정철학과 같은 코드라는 점을 알린다. (난이도 하)

Type 3코드 일체형
청와대의 국정철학과 같은 코드라는 점을 알린다. (난이도 하)

  • 이름 권OO
  • 직장 국립공원관리공단
  • 직위 이사장
  • 발령일 2017년 12월 4일
  • 주요경력 히말라야 파빌봉 등반(1982년)
  • 특이사항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부산 출생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처럼 오랜 기간 쌓이지 않으면 주목받기 어렵다. 지지선언은 쉽고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애용되지만 대선일과 가까울수록 차별화가 어렵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처럼 오랜 기간 쌓이지 않으면 주목받기 어렵다. 지지선언은 쉽고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애용되지만 대선일과 가까울수록 차별화가 어렵다.

“위의 조건을 충족할 자신이 없다면…”

‘낙하산 부대’ 스펙의 마지막 히든카드는 출신지역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지역 탕평’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 땐 취임 후 1년간 임명된 공공기관장 102명 가운데 28명, 박근혜 정부 땐 118명 가운데 23명이 TK(대구 경북) 출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 차별을 근절하겠다”며 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문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사 역시 ‘탕평’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년간 교체된 공공기관장 97명 가운데 25명은 호남 출신이었다. 신임 인사의 1/4에 해당하는 규모다. 문 대통령의 고향인 PK 지역 인사도 22명 임명됐다. 이전 정권의 사랑을 받았던 TK 출신은 그 절반 수준인 13명에 그쳤다.

정부별 공공기관장 출신 지역 (임기 1년차)

정부별 공공기관장 출신 지역
(임기 1년차)

지역만 TK에서 호남ㆍPK로 달라졌을 뿐, ‘인사 쏠림’ 현상 자체는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中 -

발행일 : 201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