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레이어 닫기

지난 7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안치된 납골묘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떠난 아이를 잊지 못하는 부모들이 드문드문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고 홍순영 군의 어머니도 그랬다. 아들이 외출할 때면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을 가슴에 묻은 채 1년을 보냈다.
"함께 외출할 때면 순영이는 늘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마미(엄마)는 내 거. 내가 보디가드 해줄게'라고 말했어요. 그랬는데 먼저…" 떠난 아들과 늘 함께 잤던 어머니는 "이제 아들의 베개를 대신 끌어 안고 잔다"고 했다.

- (남편 분과) 가끔 아드님 얘기하세요?
= 늦둥이라 수학여행 갈 때까지 끼고 잔 아들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여태까지 고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 (옆에) 끼고 잤어요. 떨어지질 않고 지금 아들 베고 자던 베개 안고 자요.

- (순영이가) 지난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많이 좋아했었나요?
= '안 간다'고 그랬어요. 밥 먹으면서 '엄마, 내가 엄마 힘들게 번 돈 가지고 수학여행 가고 싶지 않다' 그랬어요. 우리 아저씨가 일찍 쓰러졌어요 얘 4살 때 뇌출혈로 쓰러졌어 그러니 철이 빨리 들었어요. 속도 깊고 근데 이렇게 되고 나니까 너무 죄책감이 많이 생겨요. 기도할 때도 그래요. 이 죄인을 천국 문 앞에서라도… 순영이, 아들을 만나고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고 기도해요.

-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이 사랑하는 가족 잃은 게 제일 슬픔이래요. 진짜 칼로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거든요. 지독하게 겪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속상할 정도가 아니라 이제 악에 받쳐요. 살릴 수 있는 애들을 다 수장시켰잖아요. 이제는 나라에서 진상 규명을 해줘야 되는데 안해주니까. 이제 악에 받치더라고 사람이….

동영상 레이어 닫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일반인 희생자는 43명이다. 이 중 3명이 조요셉(8)군의 엄마, 아빠, 형이다. 제주도 여행을 가는 길에 요셉 군은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이후 외삼촌 지성진(47)씨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피아노학원. ‘미미파솔 솔파미레~’ 조요셉(8)군이 고사리손을 분주히 놀리자 피아노에선 베토벤 교항곡 9번 ‘합창’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요셉이는 피아노를 배운 지 한 달 된 초보. 멜로디만 칠 줄 알지만 악보를 넘기는 손길도, 건반을 두드리는 손끝도 과감하고 거침이 없다. “서툴긴 해도 박자감과 음감이 좋아 잘 따라온다”고 류은경(43ㆍ여) 원장은 칭찬한다. “항상 활달하고 친구들한테 참견도 많이 해요. 집에 갈 때는 그냥 나가지 않고 문을 수차례 여닫으며 아는 체할 때까지 우렁차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해요.”
두꺼운 안경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초롱초롱한 개구쟁이 요셉. 그런 아이에게도 아픔과 상처가 있다. 요셉이는 세월호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엄마ㆍ아빠ㆍ형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가 혼자 살아남았다.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고 3개월 동안 외래 진료를 받았다. “형아는 6학년인데, 같이 놀면 참 재밌는데….” 요셉이는 말끝을 흐렸다. 울상이 되는가 싶더니 “그래도 친구가 많아요”라며 금세 밝아졌다.
요셉이는 슬픔을 극복한 걸까. 상처가 씻은 듯 잊힐 리 없다. 대신 너무 빨리 어른이 됐다. 슬픔을 억누르고 감정을 숨기며 사는 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가족들은 요셉이가 깊은 슬픔을 쾌활함으로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요셉이를 맡아 기르고 있는 외삼촌 지성진(47)씨는 “친구도 금방 사귀고 잘 노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도 “천진난만한 것 같지만 잘 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잘못하는 게 있어도 나무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씨는 “요셉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려 했더니 ‘배 타고 가면 안 갈 거야’라고 응석을 부려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17세 꽃다운 나이의 청춘 250명이다. 반면 일반인 희생자는 43명으로 수가 적다. 환갑여행을 가던 초등학교(용유초) 동창회, 사이클 동호회, 일반 가족 등 나이와 사연도 제각각이다. 슬픔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어떨까. 희생자 수가 적거나 나이가 많다고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일반인 유가족의 심정은 비통하다.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장소에서 희생을 당했는데도 일반인 희생자는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배려와 지원 적어 더 우울
요셉이 외삼촌 지씨는 정부의 배려와 지원이 안산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대학 특례입학 혜택을 주면서 정작 부모를 잃은 일반인 가족 자녀들은 그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요셉이나 권지현(6)양이 대학을 갈 때 특례 대상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지씨는 “어떤 아픔이 더 큰 지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혜택이 그쪽으로 몰리는 특별법은 ‘세월호특별법’이 아니라 ‘단원고 특별법’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현이는 제주도로 이사 가는 길에 부모와 오빠를 잃고 구조돼 친척집에서 산다. 아버지 권재근(52)씨와 오빠 혁규(7)는 실종 상태다. 권재근씨의 형 오복(60)씨는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서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일반인 유가족은 1년간 줄곧 소외감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특별법 제정 과정은 물론 유가족 협의 때마다 자신들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현재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는 7명. 지난해 12월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책위 관계자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예 관심 대상에서 묻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 몇 명끼리라도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인양 문제에 대해서도 일반인 유가족과 안산 유가족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무조건 인양하자’는 주장부터 ‘국민 동의를 거치자’ ‘실익이 없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요셉이 외삼촌 지씨는 “실종자 9명 가족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인양으로 뭐를 더 알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실익도 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장종렬 일반인 유가족대책위원장은 “인양은 당연한 일이고 그냥이 아니라 ‘온전한 인양’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장 잃어 생계 막막한 가족들
유가족들에게 배상 문제는 민감한 주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배상금 규모를 놓고도 일반인과 안산 유가족의 의견이 갈린다. 정부가 밝힌 희생자 배상금은 단원고 학생 4억2000만원, 교사 7억6000만원이다.
반면 일반인 희생자는 소득과 연령에 따라 평균 1억5000만원에서 6억원 사이가 될 전망이다. 안산 유가족은 인양에 앞서 배상을 먼저 제시한 정부를 비판한다. 하지만 일반인 유가족 중에는 액수가 적다는 불만도 있다.
익명을 원한 유가족은 “‘가족이 죽었는데 돈만 밝힌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을 잃은 가족은 생계가 막막한데 정당한 요구까지 묵살되는 게 서운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같은 유가족끼리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와 안산 희생자 중심의 유가족 대책위는 소통이 거의 끊겼다. 일반인 유가족은 안산 유가족의 목소리에 외부 단체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태호 부위원장은 “특별법 시행령에 반대하는 삭발식 같은 것도 유가족보다는 외부 단체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 많다”며 “안산 유가족과 뜻을 같이하는 다른 유가족은 세월호 승무원 가족뿐”이라고 했다.
세월호 승무원 유가족도 마음이 애달프다. 사무장으로 일하다 희생된 양대홍(45)씨의 형 대환(57)씨는 “유가족들에게 지금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서로 합심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양쪽 유가족에게 ‘하나로 뭉쳐 대화하자’고 했더니 이후 연락이 뚝 끊겼다”고 털어놓았다. 양 사무장은 아내에게 “아이들 구하러 가야 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 달 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총리 공관서 발길 돌린 일반인 유족
지난 10일 안산 단원고와 일반인 유족이 모처럼 한곳에서 이완구 총리를 면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이 총리가 4ㆍ16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와 일반인 유가족대책위 장종렬 위원장 등 10여 명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 총리는 인양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등과 관련한 가족 측 의견과 요구사항을 들을 계획이었다. 사안마다 이견을 보이던 양측 유가족이 오랜만에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가족협의회 측은 당초 11명의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90여 명이 총리공관 인근까지 이동한 뒤 대표자만 들어가겠다고 요구해서다. 총리공관으로 무리 지어 이동하던 가족들은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자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갔다. 일반인 유가족 측은 총리공관에서 한 시간 넘게 대기하다 발길을 돌렸다. 일반인 대책위 정명교 대변인은 “모처럼 좋은 기회였는데 한쪽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면담이 깨져 유감스럽다”며 “많은 질문과 자료를 준비했는데 한마디도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동영상 레이어 닫기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50)씨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커튼을 이용해 10명의 목숨을 살렸다. 당시 파란바지를 입은 그의 옷차림 때문에 '파란바지 의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달 손목을 자해해 병원치료를 받았다. '참사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김씨는 1년 전을 회상하며 유족들에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 이렇게 말했다.
자책이 앞섭니다. 막심한 후회만 밀려옵니다. 길을 가다 창문만 봐도 세월호 안에 갇혀 구조를 바라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두 왜 잊지 못하느냐고 합니다만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잊어서는 안 될 것만 같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아야 억울한 희생을 달랠 수 있고, 또 세월호 같은 사고도 다시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젠 세월호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게 해 달라고 가끔씩 기도하곤 합니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오히려 저보다 잘 버텨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이 정말 내 자식같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지금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지만 언젠가 여러분 스스로 당당하게 세상에 서야 합니다.
나오지 못한 친구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고 생각날 때면 그 힘으로 더 학업에 정진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세월호의 기억을 계속 이어갈 힘이 생깁니다. ‘구해주신 소중한 생명, 학업에 열중해 가치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학생들이 보내준 편지를 영원히 기억하렵니다.

동영상 레이어 닫기

민간잠수업체 88수중 소속 유기주(41) 잠수팀장은 참사 이후 5월 29일부터 세월호 수색작업에 합류했다. 무너져 수색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리기 위해 세월호에 ‘ㅁ’ 자 모양 구멍을 뚫는 임무를 맡았다. 그랬던 것이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유일한 민간업체가 됐다. 유 팀장은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까지 다 찾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결과적으로 기대만 드리고 가족의 품으로 안겨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죄송스럽고 후회스런 일이 많았습니다. 수색ㆍ구조 중단을 앞뒀던 지난해 11월, 매일 바지선에 올라와 눈물을 흘리고 목 놓아 자식 이름을 부르던 다윤이ㆍ은화(실종 안산단원고 학생) 아버지께 “이제 마음을 비우고 일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일 등입니다.
따뜻한 마음은 잊지 못하겠습니다. 수색 중단을 정부에 요구하고, 마지막에 체육관으로 불러 “고맙다”며 어깨를 두드려 준 건 실종자 가족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미안해 하지 말아 동생. 안 다쳐서 다행이야”라고 해주셨습니다.
지난해 12월 저는 해저 영상 탐사를 위해 진도에서 조금 떨어진 독거도란 곳에 10번 정도 들렀습니다. 갈 때마다 팽목항에 남아 계신 몇몇 가족분들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봤습니다. 다가가서 말씀드리지 못했던 얘기를 지금 하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담담하게 이겨내십시오.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동영상 레이어 닫기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으로 내려 간 이성태 전남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세월호 유족들 곁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그 기간이 219일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윤(실종 안산단원고 학생) 아빠! 아픈 다윤 엄마 잘 챙겨주고 끝까지 용기 잃지 마세요.’
‘양승진 선생님(실종 단원고 교사) 사모님! 흔들리지 말고 기운 차리세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 없다는 것을 압니다. 219일간 세월호 희생자ㆍ실종자 가족들을 옆에서 봐 오면서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219일간의 모습은 아직도 눈 앞에 선합니다. 팽목항에서 목놓아 자식의 이름을 부르던 부모들, 되레 자식 찾은 게 미안해 안산에서 진도까지 음식을 해오던 또다른 가족들…. 특히나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체됐던 지난해 11월, 자식을 찾지 못한 채 팽목항을 서성이던 부모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저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구조의 손길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세월호 안에서 휴대전화로 장난까지 쳤건만 우리는 해준 게 없습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오는 15일부터 2박 3일간 자원봉사자들과 팽목항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묵묵히 가족들 곁을 지켜보렵니다. 국민들께서도 함께 가족들을 배려하고 보듬어 주세요. 지난해 ‘4월의 마음’처럼 안아주세요.

동영상 레이어 닫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 씨는 세월호 참사를 "돈과 속도만 중시한 한국사회의 참극"이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본지 취재팀을 만나서다. 그는 "6.25 전쟁 이후 이 사회의 지식층과 전문가층, 심지어 종교인과 교육자들까지도 '모두 돈 없으면 죽는다'는 가치를 이 사회의 유일한 신념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이 해체됐다.
= (세월호 사고) 그 당시 분위기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책임을 지기에 가장 근접해 있는 기관이 해경이었어요. 소위 '속죄양' 이라는 거죠.

- 해경 잘못은 없나?
= 해경이 준비가 잘 안 된 것은 맞지만 이것을 해경만의 문제로 밀어 붙일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가 그동안 항상 돈과 속도를 모든 것에 우선했지 않습니까. 여기에 수십년 간 몰입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해경이 사람을 구조하고 이런 시스템에 숙달되어 있기가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경 측에서도 아마 (이 분야에 대해) 많은 예산 요구를 하거나 했을 텐데…. 우리나라 사회 전체 입장에서는 해경의 그런 요구를 일일히 큰 돈 들여서 구조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까지 인식이 미치지 못 했을 거라고 보는 거죠.

-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얘긴데, 바람직한 변화는 무엇인가
=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주된 흐름이 외면적 성공이나 물질적 성과보다 인간의 생명, 인간의 내면, 인간 그 자체 등 내면적 가치로 어떻게 흐름을 바꾸어 나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이런 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하드웨어 후에 우리에게 진정 큰 숙제는 소프트웨어 거든요. 어떻게 우리 사회의 돈과 속도 중시 풍조를 안전과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존중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 지금부터 해야되는 겁니다.

'중앙선데이'는 지난 12일 '해양경찰 해체 그 이후'를 점검했다. '해경은 조직과 이름만 사라졌을 뿐 하는 일이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조직 해체 이후 충격으로 사기가 떨어졌다', '일각에선 "시범 케이스로 당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다음은 기사 전문.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에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130명을 보니 세월호 참사 그날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탄 여객선 세종호에 불이 난 것을 상정해 연막탄이 연신 피어올랐다. 최대 200명이 탈 수 있는 공기부양정과 구조대원들을 태운 고속단정 6척이 ‘사고 현장’에 급파됐다. 인천항에서 시속 80㎞로 달려 영종도 앞바다에 도착하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신속하게 세종호에 승선해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물론 선장도 퇴선 명령을 내렸다. 30여 분 만에 모든 학생이 구조됐다.
인천 해양경비안전서(옛 해양경찰서)는 지난 10일 제1회 국민안전의 날(4월 16일 세월호 참사 날)을 앞두고 인천 해사고등학교 학생 130명과 함께 인명구조 훈련을 했다. 해사고는 선장•기관장 등 해양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 고등학교다. 훈련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돼 세월호 참사와 단순 비교는 어려웠다. 세월호 이후 수십 번의 훈련이 몸에 밴 듯 우왕좌왕하는 구조대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객선 승조원과 학생들도 실제 상황처럼 긴장된 모습이었다.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옛 해양경찰청장)은 “그렇다”고 예상된 답을 했다.

참사 이후 경찰 업무보다 안전에 중점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해경이 해체됐다. 하지만 실제로 바뀐 건 별로 없다. 해양수산부 소속이던 해경은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정부조직법상 직제와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약칭은 계속 해경이다. ‘해양경찰’이라는 로고도 그대로 쓴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할 때 필요해서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은 ‘경찰’보다 ‘안전’에 중심을 두고 있다. 792명이던 수사•정보 인력은 283명으로 확 줄었다. 상당수가 육상 경찰로 옮겼고 남은 인력은 함정 등 일선 현장에 배치했다. 함정 구조인력 107명, 122구조대 78명 등 구조 분야에 모두 602명의 인력도 보강했다.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을 지시하는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모두 해경 소관으로 일원화했다. 예전엔 항만 VTS 15곳은 해수부, 연안 VTS 3곳은 해경 소관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 밖에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을 신설하고 21인승 대형 헬기도 구비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자체 헬기가 없어 사고 현장에 도착하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노후 단정도 지속적으로 교체해 나가고 있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인력•장비•훈련 측면에서 부족했던 점을 거의 다 개선한 상태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신고한 학생에게 “경도와 위도를 대라”고 했던 관제사도, 현장에 도착해 어쩔 줄 모르는 구조대원도 이젠 없다. 지난 10일 찾은 인천 VTS에서는 인천 인근 해역을 지나는 모든 배의 이름만 대면 즉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군산대 노호래(해양경찰학) 교수는 “장비 보강도 중요하지만 전국에 해양경비안전서가 17개에 불과하다”며 “파출소 개념의 광역 안전센터 수를 늘려 사고 현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안전서 한 곳이 담당하는 수역이 너무 넓으니 사이사이에 안전센터를 만들어 단거리에서 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 교수는 또 “현재 해경의 무게중심이 안전에 쏠려 있는데 해양 테러라도 발생하면 왜 치안업무는 소홀히 했느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며 “해경은 안전•치안•경비•방제 등 다양한 업무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해경 경무관급 이상 간부 10여 명 가운데 1000t급 이상 경비함 함장을 지낸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석균 해경청장은 행정고시 출신이었다. 해경 관계자는 “해경 내 전문성 있는 인력들이란 선박 관련 기술직들인데, 이들은 행정 경력이 전무하고 관심도 적어 지휘부 전문성 개선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해경은 순환보직 때 해상근무를 우선하도록 하고 현장 순환근무 기간도 2~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전문 구조인력의 관리 시스템도 여전히 구축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은 민간 잠수사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민간 구조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데 실패했다. 구난업체 언딘에 대한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해경은 민간 잠수사와 구조장비 현황을 데이터베이스화하려 하고 있지만 잠수사의 역량을 판단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대원들에 “내 가족처럼 구한다” 의식 강조
전문가들은 해양안전 수준을 높게 유지하려면 견제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주대 정상만(건설환경학) 교수는 “여객선 안전관리를 계속 해양수산부에서 관장하는 한 관피아 문제는 또 불거질 수 있다”며 “해수부는 국토해양부나 산업통상자원부처럼 특정 산업을 진흥하는 곳인데 같은 부서에 안전관리 기능까지 맡기면 제대로 된 모니터링과 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면허발급, 선박 검사 등의 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는 세월호 이전 해수부와 해경이 나눠 맡다가 세월호 이후 해수부로 일원화됐다.
세월호 참사는 해경에겐 치욕스러운 기억이다. 일부 직원은 “당시 지휘부의 무능 때문에, 국민의 몰이해 때문에 누명을 쓴 측면도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조직의 이름은 사라져도, 소속이 바뀌어도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직원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조직 해체라는 극단적인 조치 때문에 사기가 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홍익태 해경본부장의 말이다. “세월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장의 퇴선 명령이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은 떠 있는 배에서 구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해경이란 조직을 어떻게 주물러도 일을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해경은 세월호 참사 당시 VTS의 근무상태가 해이했다는 지적에 따라 교대근무와 관제사 교육기간을 더 늘렸다. 실제 상황과 같은 구조 훈련도 수없이 실시하고 있다. 반복되는 훈련, 강화된 근무수칙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홍익태 본부장은 “사람의 자세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해경 직원 한 명 한 명이 조난당한 승객을 내 가족처럼 구조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그 부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해경은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도 단속해야 하고 기름 유출 등 방제업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중국 선원들의 횡포는 지난해 10월 해경이 쏜 총에 선원 한 명이 맞아 사망한 뒤 잦아들었다는 게 해경의 판단이다. 지난해 12월 정의화 국회의장 방중 당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불법 어업 관리를 계속 강화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우리 어선이 접근하기 꺼리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치고 빠지는 식의 불법 고기잡이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해경 해체 뒤 해양범죄 수사나 관련 정보망이 허술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영상 레이어 닫기

1년 전(2014년 4월 16일) 참사를 겪은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어느덧 고3이 됐습니다. 참사의 충격과 아픔, 바로 옆 친구를 잃은 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이제 지겹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JTBC 취재진에 마음의 문을 열어준 한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는 이 학생의 부모님께 사전에 허락을 구했습니다.

안산 단원고에도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이제 3학년이 된 생존학생 박정연 양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속마음을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객실에) 물이 들어오고 나서는 불도 다 꺼지고 (나가라는) 안내방송도 없고요. 방에는 물이 들어와서 캐비닛이 무너져 그 사이에서 부딪혔어요.]
몸도 마음도 상처는 깊어만 갑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허리 디스크라고 했고 골반이 틀어졌다고 그랬어요. 계속 물리치료 받고 지금은 정신과도 다니고요. 잠은 점점 더 못 자는 것 같아요.]

정연양은 가수의 꿈을 꿨던 단짝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차라리 꿈이였으면.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다른 반이었는데 (매일 만나) 수다 떨고 그랬어요. OO는 그 자체로도 너무 소중했고 옆에 없는 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작년) 12월이 지나면 한 살을 더 먹잖아요. 2014년이 가기 전에 OO한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가 확…]

함부로 내뱉는 말에 아픔은 커집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일베처럼 무턱대고 욕은 안 했으면 좋겠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마지막 말은 간절함과 단호함이 함께 묻어납니다.

[박정연(가명)/단원고 생존 학생 : 평생 죽을 때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을걸요. 그러니 '지겹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또 시행령도 그렇고 선체 인양도 그렇고 (잘 됐으면 좋겠고)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나라에서 밝혀줬으면 좋겠어요.]

동영상 레이어 닫기

지난해 6월, 해수부가 촬영한 세월호 내부 영상입니다.

객실에 있는 침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화장실 세면대와 스위치, 남아있는 구명조끼까지 그대로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 선체는 어떻게 돼 있을까.

취재진은 지난해 세월호 수중 수색을 했던 잠수사들과 함께 진도로 향했습니다.

물살이 가장 잠잠한 때를 골랐지만 아직 쉽지 않은 상황.

잠수사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합니다.

동거차도에서 출발한 지 10여 분만에 사고 해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노란 부표가 이곳이 세월호 침몰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좌측 부분이 뭍에 1m 가까이 파묻혀 있는 상황.

수심은 44m입니다.

잠수사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줄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한 지 5분 남짓,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가운데 객실 부근, 난간 손잡이에는 이끼가 끼었습니다.

튀어나온 철근에는 군데군데 녹까지 슬었습니다.

잠수사가 만지자 녹슨 철조각들이 그대로 떨어져 나옵니다.

선체 부식이 진행 중인 겁니다.

[차순철/잠수업체 대표 : 철 구조물 자체가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녹은 당연히 염분 속에서 상당히 진행된 상황입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표면이 깨끗했던 1년 전과 달리, 선체 표면 곳곳에는 해초류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선체 표면은 물이끼로 뒤덮이고 있었습니다.

흰 선체가 녹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체에 붙어 있는 홍합까지 발견됩니다.

현재 세월호 주변에는 구조 작업에 사용됐던 줄이 미처 제거되지 않아 어지럽게 얽혀 있습니다.

[차순철/잠수업체 대표 : 희생자들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잠수사들이 설치한 유도 라인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많은 위험 요소들이 내재돼 있습니다.]

선체는 실종자들의 시신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 등 출구를 막아둔 상태입니다.

성공적인 세월호 선체 인양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결론을 내려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Part 01 세월호 1년... 그후 6명의 삶